2025 가을, 단풍이 머문 다섯 장의 풍경

 

설악산, 내장산, 지리산, 서울 도심, 제주 한라산까지. 노랗고 붉은 색이 겹겹이 쌓이는 계절에 마음이 먼저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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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데려온 길 위의 바람

일 년 중 단 한 번, 산과 도시가 동시에 붉어지는 계절이 온다.바람은 선선하고 햇살은 사려 깊다.그 사이를 걷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먼저 색을 바꾼다.길은 설악으로, 내장으로, 지리로 이어지고,마지막에는 바다와 맞닿은 제주로 멀어졌다. 

그렇게 다섯 장의 풍경이 여행 노트에 눌어붙었다.

설악산, 빛이 산에 스며드는 아침

아침의 공기는 유리처럼 맑았다. 비선대 쪽 계류 위로 안개가 걷히자, 붉은 잎들이 물빛에 번졌다.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와, 하고 속삭였다. 나뭇잎 하나가 손등에 내려앉았다. 아주 가벼웠다. 그 한 장을 책갈피처럼 끼워 두고 싶었다.

내장산, 붉은 물결의 중심

계곡을 따라 걷다 보면 길 자체가 단풍이 된다. 발끝이 바스락거릴 때마다 붉고 주황색의 숨이 올라왔다. 다리를 건너며 잠시 멈춰 섰다. 산은 조용했고, 조용한 만큼 더 선명했다. 사진 속 색은 늘 현실을 따라가지 못했다.

지리산, 느리게 물드는 오후

남쪽의 단풍은 늦게 온다. 그래서 더 깊다. 능선 위로 그림자가 길게 눕고, 숲은 자꾸만 낮아졌다. 돌계단을 오르다 뒤돌아보면, 내가 걸어온 시간이 색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오렌지, 선홍, 갈색.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무수한 사이의 색들.

서울, 돌담과 은행잎 사이

도시는 바쁨의 얼굴을 하고도, 가을이면 한 번쯤 숨을 고른다. 향원정의 물결과 은행잎의 노랑이 겹치고, 돌담길 위 햇빛이 가늘게 흔들렸다. 커피를 들고 걷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바람을 닮아갔다. 오늘의 노란빛은 내일의 사진이 되었다.

제주 한라산, 바다와 단풍의 경계

섬의 가을은 늦게 찾아와 오래 머물렀다. 억새와 단풍이 어깨를 맞대고, 멀리 바다가 반짝였다. 바람이 지나가면 잎들이 파도처럼 흔들렸다. 이 계절의 끝에서 내가 바라는 것은 단지 한 장의 맑은 하늘이었다.

작은 팁 한 줌

도시는 평일 오후가 한가롭다. 산은 이른 아침이 선물 같다. 물 많이, 따뜻한 옷 한 벌, 그리고 카메라 대신 눈으로 오래 담는 법을 챙겨가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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